새소식

  • 밴드 새창 열림
  • 트위터 새창 열림
  • 페이스북 새창 열림
  • 블로그 새창 열림
제목
강원도지사가 드리는 수해복구 호소문
작성자
전산소
등록일
2002-09-09
조회수
4336
도와 주시기 바랍니다<br />
<br />
강원도지사 김 진 선<br />
<br />
<br />
<br />
어느 날 갑자기 전국을 강타한 태풍「루사」. <br />
우리 국민들의 기억 속에는「사라호」라는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. <br />
피해규모 등에서 유사이래 최대의 태풍으로 기록되어 있고, 이에 관한 시(詩)까지<br />
나온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. <br />
<br />
그러나, 「사라호」당시엔 너무 어렸던 나에게,「루사」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<br />
되었습니다. 해외출장 중에 긴급 귀국하여 강릉에 도착했을 때는 막 어둠이 깔리기 <br />
시작했습니다. 그 아름답던 도시의 처절함, 그 참혹함을 어찌 말과 글로 표현이 <br />
가능할 수 있겠습니까?<br />
<br />
신문과 방송을 통해 자세히 보도 되고 있지만, 전체를 조감하고 현장상황을 눈으로<br />
보지 않고는 그 피해 실상을 짐작하기 어렵습니다. 두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 어려울<br />
만큼,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. 강릉을 기준으로 관측한 기록이, 한 시간에 온<br />
비의 양(時雨量)은 98mm, 1일 강우량 871mm였다고 합니다. 1년 내내 1300∼1400mm가<br />
온다는 것을 생각하면, 이번 강우의 정도가 짐작이 갈 것입니다. 강릉기상관측소가 <br />
생긴 이래 1일 강우량 최대기록은, 1921년에 있었던 305.5mm였다고 하니, 그 세배에 <br />
가까운 비가 온 것입니다. 대관령을 비롯한 중마루에는 더욱 많은 비가 왔을 터이니, <br />
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마치 폭포를 연상케 하였을 것입니다.<br />
<br />
산과 마을이 가까운 강원도의 지형적 특성을 생각하면, 산 위에서 폭포같은 세력의<br />
물이 토사를 몰고 내려와 도시전체를 덮쳤을 것이니,「폭격을 받아 완전히 <br />
파괴됐다」고 표현해야 이해가 될까요? 피해가 대규모대량이고 천문학적인 <br />
재산손실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. 강릉, 동해, 삼척, 양양, <br />
고성, 정선, 태백 등 백두대간 수계 어느 한 곳도 피해를 면한 지역이 없습니다.<br />
<br />
그런데도 이 지역 사람들은 〈우리들만 적는(겪는) 것도 아니고···〉<br />
〈하늘이 하시는 일인데····〉하고 말하는,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입니다.<br />
비가 그치고 총괄지휘를 하면서 흙더미가 덮힌 상가 침수지역, 절해 고도가 된 <br />
고립지역을 걸어서 혹은 헬기로 정신없이 찾아 다녔습니다. 사람이 찾아와 준 <br />
것만도 고마워하던 노인들. 손을 잡고 눈물만 글썽이며 말없이 고개를 돌리시던 <br />
아주머니들. 그분들이 요구한 것은 엄청난 보상금도, 당장 집을 고쳐 달라는 <br />
억지도 아니었습니다. 〈가려움병에 걸렸으니 연고가 필요하다〉<br />
〈맨땅에서 잠을 자기 어려우니 스틸로폴이 있으면 좋겠다〉는 따위가 <br />
고작이었습니다. 나 자신이 목이 메이고 말이 안 나왔지만 안으로 안으로 삼켜야 <br />
했습니다. 가뜩이나 절망한 분들 앞에서 도지사마저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<br />
않습니까.<br />
<br />
요 며칠사이 사실 몇 번씩이나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은 한계를 느꼈습니다. <br />
그 동안 적지 않게 어려움도 겪었고, 행정역량에 있어서는 제법 평가를 받으면서 <br />
자신감도 있었는데, 정말 심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. 지금 도와 시군이 최선을 <br />
다하고 있으나, 이것은 지방의 행정력 재정력의 한계를 훨씬 넘고도 넘는 <br />
대 재난입니다. 벌써 일주일째 현장을 누비고 있으나, 흙먼지와 악취로 덮힌 <br />
시가지,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흙더미와 쓰레기. 헬기공수가 유일한 고립지역. <br />
마치,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헤매는 심정입니다. <br />
<br />
모든 것을 빼앗긴 주민들도 복구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이제 정말 지쳐 가고 <br />
있습니다. 정부의 지원과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. <br />
이럴 땐 민간에서 나서야 합니다. 어느 나라든 큰 재난 때에는 국민들이 <br />
일어섰습니다. 인근시도, 수많은 민간단체, 기업 등에서 봉사와 지원에 나서고<br />
있어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. 그러나 장비, 인력, 생활물자 한가지도 아쉽고, <br />
부족합니다. 그것도 지금당장.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따뜻한 위로와 진심을 가지고 <br />
찾아와 주시는 자원봉사자들입니다. 그것이 피해주민들을 실의에서 구해낼 수 있는 <br />
유일한 힘입니다.<br />
<br />
국민 여러분, 좀 도와주시기 바랍니다.